[ 내일 신문 ] ' 마음건강 ' 자가진단 효과 ' 자살률 뚝↓'
'마음건강' 자가진단 효과 '자살률 뚝↓'
구로구, 구청·학교·백화점에 무인검진기
복지·나눔 연계했더니 자살자 43% 줄어
"누구랑 같이 영화 보고 햄버거 먹어본 적이 없어요.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을 느꼈어요. 다들 웃고 있는데 눈물이 나네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사는 오 모(52)씨에게 기억이 가물가물한 '기쁨의 눈물'을 선물해준 이는 방문간호사. 구 보건소에 설치된 '마음건강 무인검진기'로 들여다본 결과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매주 심리상담을 받던 차다. 간호사와 함께 치유과정 일환으로 극장을 방문한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며 "요즘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구로구가 주민들 스스로 마음건강을 살펴볼 수 있는 무인검진기를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다. 마음건강상담소 직원이 동료에 검진기 이용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구로구 제공
서울 구로구가 주민들 마음건강을 챙겨 톡톡히 효과를 얻고 있다. 마음의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자살예방사업과 복지연계망 확충, 주민들 사랑나눔 참여가 어우러져 5년 새 자살자 수가 42.5%나 줄었다.
2012년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 정책을 체계화한 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마음건강 검진. 주변 시선과 사회적 낙인 때문에 우울감 억압감에 시달리면서도 의료기관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이웃이 많다며 스스로 검사할 수 있는 기계를 제안한 주민의견을 받아들였다. 보건소 직원들이 전문가와 머리를 맞댄 결과 생애주기에 맞춰 우울 스트레스 정도나 자살경향성을 진단하는 기존 방식에 더해 검진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활에서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하는지 등 조언을 더한 검진항목을 고안해냈다.
고정식 기기 2개 가운데 1개는 보건소 민원실 입구 마음건강상담소 옆에 설치해 수시로 드나드는 주민과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하나는 학교와 백화점 마트 콜센터 등에서 신청을 받아 2개월가량 설치해두고 자체 검진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동형 기기는 간호인력이 휴대한 채 지역행사장이나 경로당 민방위훈련장 등 '이동상담소'에서 활용한다.
검사 당시 자발적으로 연락처를 입력하도록 해 정상·주의군을 벗어난 저·중·고위험군에 집중, 개별 접촉을 시도한 뒤 상담을 유도한다. 정신보건센터 직원 19명이 총동원돼 동별로 담당지역을 나눠 대상자를 돌본다. 아동 청소년 성인 임신·산후 육아 노인으로 세분해 접근하는데 상담·임상심리사 돌봄으로 부족하면 정신과 의사가 참여하는 자문회의를 거쳐 병원 치료를 연계한다. 임은정 정신건강증진·자살예방 파트장은 "고객상담을 주로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힘드시죠'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한다"며 "검사와 상담으로 당장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지만 희석은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서 의사회 등 25개 기관을 연계한 자살예방협의회 구성, 정신의료기관과 '마음이음 업무협약' 체결 등 지원체계와 복지통장 나눔반장 등 주민이 주민을 돕는 인적 연계망을 다졌다. 교사와 학부모가 동참하는 청소년 정신건강 지킴, 노인들을 위한 동별 순회 마음검진,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중장년층을 위한 검사비 지원 등 자살예방사업을 세대별로 특화했다. 치매조기검진과 민방위교육,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등을 활용해 최대한 많은 주민들이 마음건강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마음건강 검진만 매년 1만1000여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극단적 선택을 막아보자는 취지는 통했다. 2010년 인구 10만명당 30.1명에 달하는 주민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데 그 수치는 2011년과 2012년에는 24.9명과 23.2명으로 줄었다. 2013년과 2014년에도 19.2명과 18.5명으로, 지난해에는 17.3명까지 감소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두번째로 많던 자살사망자 수는 뒤에서 두번째로 역전됐다.
구로구는 2017년 주민참여예산으로 이동형 자가검진기 10대를 추가, 산후조리원 등 규모가 작은 시설까지 자가검진 대상을 확대한다. 중증질환자와 함께 아동·청소년과 일반 주민에 집중, 매년 한차례는 정기 검진을 유도한다는 구상도 있다. 이 성 구로구청장은 "자살을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지역사회 관심을 모으면 이웃의 극단적 선택은 막을 수 있다"며 "주민 모두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